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도입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를 전격 폐지하며,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중동 순방 중이며,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동맹국들로부터 총 6,000억 달러(한화 약 85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투자의 대가로 트럼프 정부는 이들 국가가 미국산 AI 반도체 수출 상한선을 적용받지 않도록 예외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로써 중동 주요국들은 AI 기술 도입에서 보다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했던 ‘AI 확산 규칙’을 공식 폐지한다고 밝혔다. 해당 규칙은 2024년 1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의 퇴임 직전에 공개된 것으로, 오는 5월 1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당시 규칙은 세계 각국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미국산 AI 반도체에 대한 접근을 국가별로 제한했다. 특히 2그룹에 속한 중동 국가들은 미국 AI 칩 수출의 상한선이 설정돼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규칙이 미국의 기술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며, 특히 수십 개 동맹국을 하위 그룹으로 분류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는 외교적으로 동맹국의 자존심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에게도 과도한 부담을 안겼다는 주장이다. 제프리 케슬러 산업안보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외국들과 협력해 AI 기술의 확산을 추진하되, 동시에 적대국으로의 이전을 막기 위한 강력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는 국가별 협상을 통해 AI 칩 수출 규제를 재설계할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새로운 규제 초안을 마련 중이며, 각국과 개별적인 거래를 통해 접근 권한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향후 미국과 해당 국가 간의 투자 협정이나 외교 전략의 일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이 각국의 대미 협력 수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로, AI 기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글로벌 협상 테이블이 형성되는 셈이다.

 

반면,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는 유지된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중국의 첨단 반도체 확보 시도가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를 억제하기 위한 통제책을 강화 중이다. 이날 발표된 상무부 성명에서는 화웨이의 AI 반도체 사용에 대한 직접적 경고도 포함됐다. 산업안보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칩 사용은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해당 제품의 글로벌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미국산 AI 칩이 중국 AI 모델의 학습 및 추론 과정에 사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안보 위협을 경고하는 자료도 공개됐다. 상무부는 이를 통해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제3국 경유 우회 전략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지침을 마련했다. 이는 중국이 우회로를 통해 미국의 기술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은 단순한 규제 변경 이상의 외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동맹국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계산이다. 중동 주요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동시에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가 동시에 반영된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조치를 통해 AI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고, 동맹국의 신뢰를 되찾는 한편, 중국과의 기술 냉전 구도에서도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을 던진 셈이다. AI 기술이 경제·안보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의 수출 규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