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창고형 유통업체인 코스트코를 필두로 70여 개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전례 없는 소송전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막대한 규모의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더라도, 행정부가 이미 징수해 간 관세를 순순히 돌려줄 것이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결국 이들을 법원으로 이끈 것이다. 이는 단순히 관세 정책에 대한 불만을 넘어, 정부의 행정 절차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꺼내 든 최후의 카드다. 과거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관세 소송과 달리 코스트코, 도요타, 레브론 등 각 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관세를 둘러싼 법적 싸움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앞다투어 소송에 나선 데에는 매우 현실적이고 시급한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 관세법상의 '청산' 절차 때문이다. 기업이 수입 신고를 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청(CBP)은 관세 금액을 공식적으로 확정하는데, 이를 '청산'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절차가 완료되어 관세가 일단 확정되고 나면, 추후 연방대법원에서 관세 부과 자체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더라도 기업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미 납부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버린다는 점이다. 코스트코 등은 소장에서 관세 확정 일정을 연장해달라고 CBP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며, 법원이 나서서 자신들의 환급받을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대규모 소송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꺼려왔던 대기업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난 4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상품 가격표에 관세 비용을 별도로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분노를 사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이 사건 이후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분노를 피하기 위해 관세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침묵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제는 대통령의 분노라는 정치적 위험보다, 수조 원에 달할 수 있는 관세를 영영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경제적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대법원 판결 이후 행정부가 체계적인 환급 절차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소송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모든 시선은 연방대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11월 공개 변론을 마쳤기 때문에 이르면 이달 중에도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포브스 등 외신에 따르면, 대법관들이 공개 변론 과정에서 관세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수조 원에 달하는 관세를 일괄 환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혼란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관세 정책은 위법이지만, 그 효력을 과거로 소급하여 적용하지는 않는다'는 식의 절충적인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기업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로, 소송에서 이기고도 정작 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