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코스피에 쌓인 매도 포지션, 반전의 불씨 될까

국내 증시에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극단적으로 쏠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스피 하락을 예상하고 매도 포지션을 잡은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시장 상황을 바꿀 만한 작은 호재만 등장해도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움직임이 집중되면서 지수가 급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는 21일 보고서를 통해 코스피 시장에 숏 포지션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쌓였다고 진단했다. 숏 포지션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매도에 베팅하는 투자 전략이다. 씨티는 현재 시장의 포지션이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만큼, 예상과 달리 주가가 오를 경우 투자자들의 매수 움직임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츄 씨티 전략가는 코스피200 선물 숏 포지션의 77%가 현재 수익 구간에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을 얻는 포지션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롱 포지션은 상대적으로 얇게 형성돼 투자자들의 시장 전망이 하락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츄 전략가는 이 같은 상황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가장 한쪽으로 치우친 포지셔닝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하락에 베팅한 거래가 과도하게 몰려 있을수록 예상치 못한 상승 재료가 나타났을 때 반대 방향으로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비슷한 방향에 베팅하고 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때 이들이 동시에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현상이 바로 ‘숏커버링’이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가 주식을 빌려 먼저 매도한 뒤, 이후 주가가 내려가면 더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들여 갚고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 손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공매도 투자자는 추가 손실을 피하려고 주식을 되사들일 수 있다.
이처럼 기존에 매도했던 주식을 다시 매수해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을 숏커버링이라고 한다. 공매도 세력이 동시에 주식을 사들이면 일반적인 매수 수요에 더해 추가적인 매수세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주가 상승이 다시 숏커버링을 자극하는 흐름이 이어지면 짧은 시간에 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는 ‘숏커버링 랠리’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씨티는 국내 증시에서 하락 베팅이 집중된 배경으로 글로벌 반도체 설비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악화한 거시경제 환경을 꼽았다. 반도체 산업의 투자 흐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금리와 에너지 가격, 지정학적 위험 등 여러 변수가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씨티는 주요국 통화정책과 시장 환경의 변화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움직임과 일본은행의 정책 조정, 에너지 가격 상승,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이 방어적인 포지션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증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본 닛케이지수와 홍콩 항셍지수 등 아시아 주요 증시에서도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포지션이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씨티는 현재 코스피 시장의 포지션이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다는 점 자체가 향후 반등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미 숏 포지션의 상당수가 수익을 내고 있는 만큼,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면 투자자들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매수에 나설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증시의 기초 여건을 개선할 만한 작은 호재라도 나타날 경우 하락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앞다퉈 포지션을 정리하면서 지수 상승 폭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숏 포지션이 많이 쌓였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반등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장의 상승을 이끌 만한 재료가 나타나지 않거나 반도체 투자 전망과 거시경제 환경에 대한 우려가 계속된다면 하락 베팅이 유지될 수도 있다. 반대로 예상보다 긍정적인 경제 지표나 기업 실적, 산업 전망 등이 나타나면 기존의 매도 포지션이 빠르게 청산되면서 시장 흐름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국내 증시의 향후 흐름은 하락에 베팅한 포지션이 얼마나 빠르게 정리되는지와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요인이 등장하는지에 달려 있다. 씨티의 분석은 코스피에 매도 포지션이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 같은 쏠림이 상황 변화에 따라 강한 반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실제 숏커버링 랠리가 나타날지는 향후 시장 여건과 투자자들의 대응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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